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문단 편집) === 경기 외적인 부분 === * [[정몽준]] 부회장에 말한 바에 따르면, 아버지([[정주영]] 회장)에게 공동개최 사실을 말하자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07957|"몽준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했다고. 일본을 제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따낸 정주영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았을 수 있었다.[*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당시는 경쟁 상대가 상당히 만만한 나고야였고 이미 올림픽을 2차례씩이나 진행했던 참이라 "도쿄와 삿포로에서 했는데 또?"라는 식으로 다소 시큰둥해서 일본 측의 개최 열기가 높지 않았었다. 반면 월드컵 유치는 한국은 물론 일본도 갖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올림픽 유치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1998년 프랑스 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이 고작이라 명분에서도 밀렸다. 하지만 1989년에 월드컵 유치위가 출범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1994년에서야 늦깎이로 부랴부랴 참가했다는 점 역시 1988 올림픽과의 큰 차이점. 1988 유치전에서도 한국이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나고야가 1977년, 한국이 1979년에 유치전을 시작해 크게 차이가 나는 편은 아니었다.] * 이 시절 카메룬 대표팀은 무려 민소매 유니폼을 도입했는데, [[제프 블라터]]가 보기 안 좋다고 [[https://www.dreamteamfc.com/c/news-gossip/387851/cameroon-puma-kit-2006-world-cup/|비판]]했다. 근데 블라터는 여자 축구 선수 핫팬츠 착용을 주장한 적이 있어서 [[내로남불|까였다]]. 결국 카메룬 대표팀은 민소매 유니폼 안에 반팔 언더웨어를 [[https://www.footballkitarchive.com/cameroon-2002-home-kit/|받쳐 입고 뛰었는데]][* 두 겹으로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니 기능성 유니폼의 의미가 없어졌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1승 1무 1패로 탈락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 강호 독일을 넘지 못하고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용품 스폰서과 관련해 D조는 모든 조를 통틀어 나이키가 3팀(한국, 포르투갈, 미국)에 들어갔다. 폴란드만 푸마였다. * 이때를 기점으로 [[서포터즈]] 클럽인 [[붉은 악마]]가 유명해졌다. 2002년 당시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특히 매 경기마다 펼친 카드 섹션 퍼포먼스가 매우 화제가 되었다.[br]각 경기별 카드 섹션 문구는 다음과 같다. * 폴란드전: WIN 3:0[* 경기는 2:0으로 종료.] * 미국전: GO! KOR 16! * 포르투갈전: 대한민국 * 이탈리아전: AGAIN 1966[*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을 의식한 문구. 붉은 악마 측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적은 건데, 문구를 미리 발견한 이탈리아 측에서는 항의까지 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반대로 잉글랜드는 이거 보고 싱글벙글했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자기네가 유일하게 우승한 월드컵이다. 독일 부분 첨언하자면, 1966년 결승에서 잉글랜드에 패한 나라가 [[서독]]이다. 연장전까지 해서 2:4 잉글랜드 승.] * 스페인전: PRIDE OF ASIA * 독일전: 꿈★은 이루어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해 유니폼에 별을 새기자는 의미.] * [[튀르키예]]전: CU@K-리그[* See you at K-리그. 월드컵은 끝났으니 이제는 [[K리그]]에서 보자는 뜻이다.] * || [youtube(Q-H1Q4EzRuU)]|| [youtube(I4OPh9RHJjM)] || ---- || [youtube(OwJ0ff4B0lg)] || [youtube(bosv_1iZqek)] || ---- 길거리 응원은 대단한 장관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모두의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한 일화로 90대 할머니가 [[3.1 운동]] 이후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자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월드컵부터다. 정확히는 4강전부터. 그 이전까지는 국제스포츠 중계시 자막에 보통 ‘한국’이라고 썼고 신문이나 TV 등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보통 [[대한민국]]이라고 정식 명칭을 전부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며 이 월드컵조차도 8강전까지만 해도 한국이라는 표기가 주를 이뤘지만, 4강전에서 SBS가 선제로 한국 표기 대신 대한민국 표기로 자막을 바꾸고 송출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월드컵 종료 시점에서는 언론에서도 꼬박꼬박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고, 이 이후에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지상파 3사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표기로 자막을 통일하면서 완전히 대한민국이라는 표기가 자리를 잡았다.] 월드컵의 단골손님인 [[훌리건]]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이건 잉글랜드가 속해있는 F조가 일본에서 경기를 치렀던 것도 있다.] 응원 이후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거리통제를 나온 의경들이나 당시 군부대[* 이 때 취사장에서 보던 연병장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내응원을 하던 부대마다 차이는 있으나 한국팀 경기는 단체응원을 했다고 한다.]와 신병교육대는 물론이고[* 당시에는 훈련병들은 TV시청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월드컵 만큼은 연병장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연병장(운동장)에서 한국팀 경기만큼은 훈련병들도 무조건 관람하게 했다고 한다.] 장례식장도 월드컵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원본은 [[http://web.archive.org/web/20170627123322/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91504_19562.html|2002년 6월 15일자 MBC 뉴스데스크 일부]]. 장소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장례식장이며, 포르투갈전 다음 날 뉴스 영상이다. 골이 들어가자 [[상주]]와 유가족들 조문객이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시민들[* 8강전 승리 때에는 수유동의 어느 경찰마저 순찰차 위에 올라갔다. 물론 외친 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몰려나온 시민들에게 '차도에 나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였다.]이 시내버스 천장 위에 올라가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보인다거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소매치기]], [[성추행]] 등의 범죄도 벌어졌었다. * 거리 응원 당시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경찰(의경)이 동원되었는데, 이 의경들은 아무리 길거리 응원 시민 질서 통제를 나왔어도 경기 전에 애국가 연주시에는 통제를 잠시 중단하고 신분 특성상 거수경례를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군부대에서 군인들은 영내 단체 응원시 마찬가지로 경기 직전에 애국가 연주시 거수경례는 군인 신분이기에 반드시 했다고. * [youtube(a-WquJieUKc)] 사회와 격리된 공간인 [[교도소]]와 [[구치소]]에서도 이 기간만큼은 밤 늦게까지 TV를 보면서 월드컵 응원을 허용했다.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정숙을 지켜야 히는 신성한 공간인 [[절(불교)|사찰]], [[성당]], [[교회]] 등지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떠들썩하게 응원을 하였다. 이 외에도 평소에는 조용한 공간에서도 월드컵 기간 동안만큼은 많이 떠들썩하게 응원했다. * [youtube(kbFLrqzARRk)] 일부 [[대한민국 국군]] 부대에서는 단체로 영내 [[연병장]] 응원을 하기도 했다. 특히 부대 주변 민간인들도 초청한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 심야시간의 경기시 일부 부대는 한국 경기에서 국가 연주시에 국기강하식을 동시에 하기도 했으며, 군인인 만큼 영내 응원시 [[애국가]] 연주시 [[거수경례]]는 반드시 했다. *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끌고있던 [[이박사]]는 응원가에서 코리아재팬과 재팬코리아를 둘다 부르는 묘수를 보여줬다. * 일본의 경우, 유이하게 [[수도(행정구역)|수도]]에서 열리지 않은 월드컵이다.[* 단, [[요코하마시]]와 [[이바라키시]], [[사이타마시]] 등은 [[도쿄도]]에서 인접해있으며 [[수도권(일본)|일본 수도권]]에 속하는 지역인지라 도쿄에서의 접근에는 문제가 별로 없었다. 도쿄의 경우 높은 지가로 인해 신축 월드컵 경기장을 지을 여건이 되지 않았고, 기존의 경기장들도 노후화되어 월드컵을 개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월드컵 유치 신청을 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선례는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의 스톡홀름. 같은 주 솔나에서 대신 개최되었다.] * [youtube(pLd9Z65U8qY)] [[데이비드 베컴]]을 위시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헤어 스타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베컴의 [[모히칸 스타일|포호크 머리]]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누구나 따라하는 간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호나우두]]의 소위 [[다리미]] 내지는 [[깻잎]]머리는 만인에게 큰 웃음을 주며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가 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막은 참 씁쓸한데,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부상으로 인해 인터뷰 시 부상에 관한 질문만 받아서 기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그런 헤어스타일을 했다고 한다. * 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선수들은 대회 종료 후 모두 [[예술체육요원|병역 혜택]]을 받았다. 이미 [[1990년대]]에도 월드컵 16강 가면 병역혜택을 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 만큼 그 가치를 높게 평가 했었고, 아예 법으로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5월 10일 뉴스를 보면 16강 진출 시 병역특례에 관해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곧 열겠다고 할 정도로 법개정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2002년 5월에 국회의원 147명이 16강 진출 시 병역혜택을 줄 수 있는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하도록 이한동 전 국무총리에게 건의문을 전달하기도 했으니 마냥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다. 2002년 6월 14일 [[인천광역시]] [[문학 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을때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축하해주는 일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대표팀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성과와 보상에 대한 얘기가 오고갔는데,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젊은 선수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들에게 병역에 관한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했고,[* 참고로 홍명보 본인은 이미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친 뒤였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일사천리로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여당·야당뿐 아니라 설문조사를 해도 국민의 과반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와서 반대 의견은 힘을 잃었다. 원래 국방부와 병무청은 반대 입장이었다. 이렇게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는 [[현영민]], [[김남일]], [[최태욱]], [[설기현]], [[이영표]], [[이천수]], [[차두리]], [[안정환]], [[박지성]], [[송종국]] 등이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4강 진출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16강 진출 기념으로 16강전이었던 이탈리아 전과의 결과와 상관없이 병역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종목에만 병역 혜택을 준 사례가 있었기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 기념으로 야구 선수들에게 법을 바꿔서 병역특혜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종목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원칙은 모든 종목에게 같은데 축구와 야구에만 특혜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FIFA 월드컵]]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병역 혜택은 사라졌다.] 사실 축구든 야구든 특정 종목에만 따로 특혜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특히 어떤 대회를 통해서 즉흥적으로 여론에 따라 법을 바꾸는것은 냉정하게 봐서 잘못된 것이다. * [[HD]]로 중계가 된 첫 번째 월드컵이다. 전체 64경기 중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의 경기와 주요 경기를 포함 48경기가 HD로 중계되었다. [[http://www.hbs.tv/missions/2002-fifa-world-cup-korea-japan/|월드컵 주관방송사 HBS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2002 월드컵부터는 HBS라는 전용 방송사에서 국제신호 제작을 전담했다. HBS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원문-A separate High Definition 1080i clean feed was also provided alongside the Standard Definition 4/3 feeds for live coverage of 48 matches of the 64 played at the event, highlights covered all other matches. Eight special HD cameras were employed to achieve the HD production.-대략적인 내용은 8대의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1080i로 제작되었고 64경기 중 48경기를 생중계했으며 하이라이트는 전 경기를 제작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정보통신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치르게 될 32경기 중 24경기 이상을 HD로 제작해 총 48경기 이상을 HD로 제작하고 이 중 43경기 이상을 실황 중계한다고 밝혔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2052440830|출처]][[https://archive.is/mZfFJ|아카이브]] 당시에 월드컵 HD 중계 편성 정보를 알려주던 사이트가 있었다. [[http://web.archive.org/web/20020609021820/http://www.digital-tv.or.kr:80/bbs/read010.html|당시 월드컵 경기 방송 일정을 알려주던 사이트 아카이브]][* 여기는 SBS 단독 HD중계 19경기와 KBS 단독 HD중계 3경기를 포함해 총 52경기가 HD로 중계된 것으로 나와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